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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리뷰 – 정체성과 분열의 미장센

by nuar_insight 2025. 8. 1.

'리얼'은 화려한 비주얼과 파편화된 서사로 정체성의 혼란을 형상화한 문제작이다.

영화 리얼 포스터

1. 파편화된 서사와 정체성의 혼란, ‘리얼’의 세계관

2017년 개봉 당시 영화 리얼은 국내에서 상당한 화제작이자 문제작으로 불렸다. 김수현이라는 톱스타의 첫 단독 주연작이라는 점, 그리고 그가 전역 전 마지막으로 남긴 상업영화라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봉 후 관객들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갈렸다. 어떤 이들은 “완벽한 난해함”이라 말했고, 어떤 이들은 “장르가 무엇인지조차 불분명하다”며 혹평했다.

하지만 영화 덕후의 입장에서 리얼그 자체로 분석할 가치가 충분한 영화다. 단순히 영화가 좋았냐 나빴냐를 떠나, 이 작품은 어떻게 관객의 인식과 기대를 해체하고, 시각적으로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가에 대한 해석이 요구된다.

리얼의 핵심은 정체성의 분열이다. 주인공 장태영(김수현)은 카지노 재벌이 되기 위해 ‘완벽한 자아’를 만들어가려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곧 또 다른 장태영과 마주한다. 현실과 환상, 육체와 영혼, 자아와 타자, 그리고 기억과 망각이 복잡하게 얽히며 영화는 내면에서 벌어지는 정체성의 혼란을 외화(外化)한다.

이 영화가 난해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야기의 시간과 인물의 관점이 일정하지 않고, 플롯이 비선형적으로 흘러간다. 관객은 이야기의 순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조각난 이미지와 대사를 통해 직접 해석해나가야 한다. 일종의 퍼즐처럼 구성된 서사는 혼란을 일으키지만, 그 혼란 자체가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정신적 상태이기도 하다.

특히 ‘리얼’이라는 단어는 영화 내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허상인가를 반복적으로 묻는다. 하나의 캐릭터가 두 개의 얼굴로 나뉘고, 동일한 공간에서 서로를 죽이기도 하며, 끝내 관객은 ‘도대체 누구의 이야기를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도달한다. 이것은 단순히 줄거리를 잘못 구성해서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그 ‘불확실함’을 연출의 핵심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2. 김수현의 도전, 캐릭터와 배우의 이중성

이 영화에서 김수현의 연기는 도전적이다 못해 실험적이다. 그는 영화 내내 두 명의 장태영을 연기한다. 한 명은 냉혹하고 성공지향적인 카지노 재벌이며, 또 다른 한 명은 말투도 다르고 표정도 다른 의문의 존재다. 이 둘의 관계는 처음엔 대립적이지만, 점점 애매한 경계로 흐른다. 누구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결국 영화는 ‘하나의 인물이 두 개로 분열되었는가, 아니면 두 사람이 하나로 병합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김수현의 연기는 이런 불확실한 내러티브 위에서 감정의 농도를 달리한다. 극도로 감정 억제된 장면에선 냉철함과 공허함을 보여주고, 격정적인 장면에서는 광기와 불안을 내보인다. 특히 거울 앞에서의 신(Scene)은 그 자체로 리얼의 주제를 시각화한 장면이다.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서로를 부정하는 이중 장태영의 모습은, 이 영화가 정체성을 다루는 방식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흥미로운 건, 김수현이 이 영화를 위해 일부러 불균질한 발성, 의도적인 긴장감, 말의 템포 등을 다르게 구성했다는 점이다. 이는 동일 배우가 같은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캐릭터 간 차이를 주기 위한 전략인데, 이것이 관객에게 혼란을 주는 동시에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러한 연기는 기존 김수현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준 선한 이미지나 멜로적인 감수성은 철저히 배제되고, 이 작품에서는 무표정 속에 감춰진 광기, 그리고 자신조차 제어할 수 없는 폭력성이 전면에 배치된다. 이 연기 변신이 모두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김수현이 배우로서 어떤 실험과 도전을 했는지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배우와 캐릭터 모두 이중성을 갖고 있으며, 이중성 자체가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지탱한다. 현실과 허구, 배우와 캐릭터, 정체와 분열—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얽혀 리얼이라는 제목을 설명하고 있는 셈이다.

3. 스타일 과잉인가, 시각적 정체성인가

리얼은 그 무엇보다도 스타일이 압도적인 영화다. 이는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이퍼 리얼리즘네오 누아르적 스타일을 추구한다. 조명, 색보정, 구도, 세트 디자인까지 모든 것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놓여 있다. 실제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이질적이고, 현실 같은데 꿈처럼 보이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이러한 연출은 리얼의 서사적 목표와 맞닿아 있다. 불안정한 시각성은 곧 불안정한 자아를 상징한다. 장태영의 정신세계는 일정하지 않으며, 영화 속 공간들은 마치 미로처럼 느껴진다. 빛과 그림자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조명, 복도나 거울을 활용한 기하학적 구도는 이 영화가 인물의 심리 상태를 어떻게 공간화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카메라가 인물의 머리 뒤를 따라가는 3인칭 슈팅 게임 같은 구도, 과장된 슬로우 모션, 정면을 바라보는 클로즈업 속 대사 없는 응시 같은 실험적 장면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이 모든 장면들은 관객을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야기 밖’으로 밀어내면서 관찰자이자 분석자로 위치시킨다. 이것은 매우 영화적인 전략이며, 동시에 관객에게 큰 인내심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배경음악과 음향 역시 과감하다. 전통적인 멜로디나 감정 유도형 사운드는 거의 없으며, 불협화음이나 반복적 음향이 분위기를 지배한다. 이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짓기보다, 모든 감각을 모호하게 만들어 ‘이해’보다는 ‘경험’을 유도한다.

많은 관객들은 이 스타일이 ‘과잉’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덕후 입장에서 보자면, 이 과잉이야말로 리얼의 본질이다. 이 영화는 결코 ‘쉽게 보이는 이야기’를 전달하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스타일과 연출을 동원해, 자아가 해체되고 있는 인물의 심리를 시각화한 실험적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실험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 한국 상업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시도였다는 점에서 충분히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이 영화가 지금도 재평가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그 안에 깃든 강한 개성과 시도,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적 질문으로 돌아가려는 야심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