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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 리뷰 – 여성의 몸과 존엄성

by nuar_insight 2025. 7. 15.

2015년 영화 ‘마돈나’는 병원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존재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회가 외면한 한 여성의 이야기,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또 다른 여성의 시선을 통해 덕후 시선으로 영화 속 메시지를 깊게 파고들었다.

1. 병원이라는 폐쇄 공간 – 사회 축소판 속의 여성

영화 《마돈나》는 폐쇄된 공간인 병원을 중심 배경으로 삼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권리, 존엄성, 여성의 몸에 대한 소유와 통제를 날카롭게 그려낸다. 영화는 임신한 채로 뇌사 상태에 빠진 한 여성의 삶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 이야기는 겉으로는 의료윤리를 다루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성의 삶과 몸이 어떻게 대상화되고 사회적으로 침묵당하는가에 대한 본격적인 질문이다.

주인공 ‘혜림’은 간병인으로 병원에 취직한다. 혜림은 자신의 삶조차 버겁지만, 병원의 환자들을 보살피는 일상에서 묵묵히 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임신한 채로 의식을 잃고 입원하게 된 여성 ‘장미’가 등장한다. ‘마돈나’는 장미의 별칭이자, 동시에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모성과 성의 이중적 상징을 모두 내포한다.

장미는 과거에 성매매를 했고, 외모 때문에 조롱받으며 살아온 여성이다. 병원에선 그녀의 과거를 두고 비난과 조롱이 오간다. 심지어 의사, 간호사, 간병인들조차도 장미를 ‘인간’이 아닌 ‘뇌사 상태의 생식기’로 대하며, 태아를 낳게 할 도구처럼 취급한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여성의 몸이 사회에서 어떻게 기능적으로만 이용되는지를 냉철하게 드러낸다.

감독 신수원은 매우 절제된 시선으로 이러한 상황을 관찰한다. 혜림이 장미의 과거를 추적하며, 그가 단순한 '문제적 환자'가 아닌 고유한 삶을 살아온 존재임을 알아가는 과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도달하게 한다.

덕후 입장에서 이 영화가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공간 연출과 인물 간 시선의 거리다. 병원이라는 배경은 청결하지만 비인간적이고, 각 공간은 감정을 차단하는 식으로 구성돼 있다. 복도, 병실, 수술실은 모두 삶이 아니라 기능을 위한 장소처럼 보인다. 그 안에서 장미라는 존재는 침묵하지만, 오히려 그 존재 자체로 세상의 위선을 증명한다.

2. ‘마돈나’라는 이름 – 성녀인가, 죄인인가

영화의 제목이자 핵심 상징인 ‘마돈나’는 단순한 인명을 넘어서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상징을 이중적으로 표현하는 장치다. 기독교 문화에서 마돈나는 순결한 성모이자 희생적인 어머니를 의미한다. 그러나 영화 속 ‘장미’는 사회적으로 그와 정반대에 놓인 인물이다. 성매매를 했고, 뚱뚱하며,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영화는 이 두 가지 이미지를 겹쳐놓는다. 결국 장미는 한 생명을 잉태하고 있고, 그녀의 임신은 그녀의 의사와 무관하게 타인의 욕망에 의해 해석된다. 어떤 이는 그녀를 ‘아이를 위한 희생자’로 포장하려 하고, 어떤 이는 ‘쓰레기 같은 여자’라며 낙인찍는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대단히 강력한 질문을 던진다. 누가 그녀를 판단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녀는 정말 자신이 원해서 아이를 가졌는가? 그녀의 몸과 결정권은 누구의 것인가?

혜림은 장미의 과거를 하나씩 알아가며, 단순한 간병인의 위치에서 벗어나 장미의 삶에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은 관객에게도 확산된다. 장미의 침묵은 비단 ‘의식 없음’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그녀를 침묵시켜왔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관객은 기존의 시선에서 벗어나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와 같은 메시지는 대단히 섬세하고 무겁다. 영화는 여성 혐오, 계급, 낙태, 종교, 의료 윤리 등 수많은 주제를 다루지만, 과잉되거나 설교적이지 않다. 덕후 시선에서 본다면, 이러한 균형감 있는 서사와 상징은 반복 관람을 통해서 더 큰 울림을 준다. “마돈나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이 사회가 ‘여성’이라는 존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강요하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3. 혜림의 시선과 변화 – 연대, 그리고 작은 저항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변화는 주인공 혜림에게서 일어난다. 그녀는 처음엔 장미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 속에서 업무를 대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이 여성이 가진 삶의 무게를 마주하게 된다. 그녀가 병원 외부에서 장미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여정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존재에 대한 인정, 인간에 대한 예의에서 출발한다.

혜림이 마침내 장미의 과거와 진실을 알아가고,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측은지심’이 아닌 동등한 인간으로의 존중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사회가 외면한 한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가장 근본적인 저항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혜림의 변화는 관객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장미가 말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인생은 이야기되고, 이해되고, 결국 공감받는다. 이것이야말로 영화의 궁극적 목표다. 침묵하는 존재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것.

감독 신수원은 인터뷰에서 “가장 말이 없었던 캐릭터가, 가장 많은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바람은 고스란히 영화 속에서 실현된다. 장미는 끝까지 말을 하지 않지만, 그녀의 존재는 관객의 머릿속에 뚜렷한 울림을 남긴다.

혜림이 마지막에 선택하는 행동은 대단히 소박하지만, 그 어떤 영웅적 행위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준다. 그것은 누군가의 인생을 이해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존중이며, 사회가 귀 기울이지 않는 목소리를 향한 유일한 연대다.

총평 – 침묵 속 외침, ‘마돈나’가 남긴 질문들

《마돈나》는 단순한 병원 드라마도, 윤리적 딜레마를 던지는 공론화 영화도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지워진 사람’을 다시 한 번 인간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다.

  • 폐쇄 공간에서 드러나는 계급적 단절
  • ‘마돈나’라는 상징을 통한 여성의 몸과 신화에 대한 전복
  • 침묵하는 존재를 말하게 만드는 간접 서사
  • 연대와 공감이 만들어내는 잔잔하지만 강력한 저항

덕후 입장에서 이 영화는 너무나도 분석하고 해석할 지점이 많은 작품이다. 또한, 한 번의 감상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번 곱씹으며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밀도 있는 영화적 완성도를 자랑한다.

장미는 끝내 말하지 않지만, 그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한다. 사회가 침묵시킨 존재에게 말을 걸고,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 그것이 이 시대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연대가 아닐까.

《마돈나》는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가장 깊은 곳까지 울리는 질문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