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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시간 리뷰, 성장·죄책감·회복의 여정

by nuar_insight 2025. 8. 7.

소년의시간 리뷰: 소년이 감당한 죄책감과 성장의 고통, 그 안에서 피어나는 회복과 용서.

소년의시간 포스터

1. 죄의 무게를 짊어진 소년, 성장의 시작점

〈소년의 시간〉은 한 소년이 저지른 '실수 혹은 범죄'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범죄 스릴러도 아니고, 단순한 사법 드라마도 아니다. 이건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마주한 한 아이의 성장 기록에 가깝다.

주인공 준영은 10대 후반의 평범한 소년이지만, 한 사건으로 인해 그의 삶은 뒤바뀐다. 그리고 그 사건은 단순한 사회적 판결만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 새겨진 ‘상처의 출발점’이 된다.

이 영화가 인상적인 이유는 ‘소년’이라는 키워드가 단순한 나이를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의 소년은 미성숙함, 무지함, 그리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 그 자체를 상징한다. 죄를 짓고 그에 대한 벌을 받았지만, 그 벌보다 더 무거운 건 '그 후의 시간'이다.

준영은 끊임없이 자신을 되묻는다. “나는 나쁜 사람일까?” “나는 다시 웃어도 되는 걸까?” 이 질문들이 반복되며, 영화는 점점 더 소년의 감정 내부로 들어간다.

자극적인 연출 없이도 인물의 감정선이 깊이 있게 전달되는 건 배우의 내면 연기와 카메라의 거리감 덕분이다. 관객은 준영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기보다는 그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게 이 영화가 가진 특별함이다. 한 소년이 죄를 안고 살아가는 ‘시간’을 온전히 함께 통과하는 경험.

2. 가족과 사회, 그리고 용서의 복잡한 감정선

〈소년의 시간〉은 소년 개인의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주변 인물들, 특히 가족과 사회가 어떻게 ‘죄’를 받아들이는지를 면밀히 보여준다.

먼저 가족. 준영의 부모는 아들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를 감싸고 싶어 하고, 동시에 사회적 시선을 두려워한다. 이 모순된 태도는 극 중 가장 현실적인 감정선으로 묘사된다. ‘사랑하지만, 지켜주기 어렵다’는 그 아이러니한 감정이 관객의 마음을 짓누른다.

사회 역시 모순적이다. 소년이라는 이유로 선처받을 수 있는 나이지만, 한 번 낙인이 찍히면 어디서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학교, 이웃, 또래 친구들 모두 준영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든다.

그리고 이 영화가 가장 찌르는 부분은 ‘용서’다. 과연 피해자는 용서할 수 있는가? 가해자는 용서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 사회는 그 중간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소년의 시간〉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그 감정의 복잡함 자체를 존중하며 서사를 풀어간다. 관객은 누구의 입장도 쉽게 단정지을 수 없게 되고, 그 감정의 회색지대에서 오히려 깊은 공감을 느낀다.

가해자와 피해자, 보호자와 사회, 용서와 응징… 이 모든 단어들이 한 인물의 삶을 중심으로 얽혀드는 이 구조는 단순한 인간 드라마를 넘어서, 윤리적 고찰을 동반한 이야기로 승화된다.

3. 미장센과 사운드, 감정의 빈틈을 채우다

이 영화가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철저하게 계산된 미장센과 사운드다.

먼저 색감. 〈소년의 시간〉은 전반적으로 차갑고 무채색에 가까운 톤을 유지한다. 이는 준영의 감정 상태와 외부 세계의 냉혹함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따뜻한 색감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감정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미세한 색의 변화만으로도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카메라의 앵글 또한 중요하다. 준영이 누군가에게 외면당할 때는 항상 멀리서, 혹은 등 뒤에서 찍힌다. 그 거리감은 관객과 준영 사이에 물리적인 ‘벽’을 만들며, 그가 느끼는 고립감과 동일한 감정을 체험하게 만든다.

음악은 절제되어 있다. 대부분의 장면에 음악은 없고, 필요한 순간에만 아주 조용한 피아노나 현악이 깔린다. 그 덕분에 감정의 절정에서 오히려 침묵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특히 마지막 장면, 준영이 오랜 시간 침묵 끝에 어떤 선택을 내리는 순간은 배경음 하나 없이 오로지 호흡, 눈빛, 그리고 주변 소리로만 감정을 전달한다.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의 연출력은 충분히 입증된다.

이처럼 〈소년의 시간〉은 시각과 청각의 미세한 조율로 ‘감정의 틈’을 메우며 관객을 소년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인다.

총평

〈소년의 시간〉은 단순한 성장영화가 아니다. 이건 한 인간이 죄와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살아내는 이야기다.

그 안에는 용서받지 못한 죄, 이해받지 못한 고통,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의 시간이 담겨 있다.

감정의 강요 없이, 억지스러운 희망 없이, 오직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오랜 여운을 남긴다.

‘소년’이었던 시절을 지나온 사람, 혹은 지금 ‘소년’을 키우는 이들에게 반드시 한번은 보여줘야 할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