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작가의 '악귀'는 정통 미스터리와 한국식 귀신 설화를 결합한 공포 미스터리의 정점이다.
1. 귀신이 사는 사회, 설화와 현대의 충돌
<악귀>는 표면적으로는 ‘빙의’를 다루는 퇴마 드라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은, 단순한 공포 서사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까지 함께 담아낸다는 점이다.
김은희 작가 특유의 철저한 리서치와 설화적 구조를 바탕으로, <악귀>는 현대적 배경 속에서 ‘귀신’이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극 중 등장하는 귀신은 단순히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이고,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낸 괴물이며, 또한 인간의 탐욕이 낳은 그림자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무당 문화와 민간신앙, 설화의 요소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방식이다. 기존 퇴마물들이 종교적 이론에 기초했다면, <악귀>는 무속신앙을 정교하게 다듬어 설득력 있는 세계관으로 끌어올렸다. 이는 단순한 분위기 조성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무속은 곧 억눌린 자들의 언어이고, ‘귀신’은 사회적 약자의 상징이다.
스토리는 ‘산 사람보다 죽은 자가 더 많은 진실을 알고 있다’는 전제를 따르며 진행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건 언제나 ‘사람’이라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2. 연기 앙상블과 심리 스릴러적 연출
<악귀>가 대중적으로 화제를 모은 이유 중 하나는 배우들의 몰입감 넘치는 연기다. 김태리의 1인 2역 연기는 특히 압도적이다. 그녀는 한 몸에 두 인격, 두 존재를 담아야 했다. 평범한 취업 준비생 ‘산영’과, 악귀에게 잠식당한 후 점점 변해가는 또 다른 자아. 눈빛, 말투, 걸음걸이까지 완전히 달라지는 연기 디테일은 보는 이의 소름을 자아낸다.
오정세 역시 극에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귀신을 보는 남자 ‘혜상’은 자칫하면 클리셰적인 캐릭터로 소비될 수 있었지만, 오정세의 연기는 그를 입체적인 인물로 만든다. 그는 이성적인 학자이자, 동시에 과거의 상처를 가진 인간이며, 산영과의 관계 속에서 미묘한 감정선도 함께 그려낸다.
이 드라마의 미덕은 공포가 단순히 점프 스케어나 음산한 배경음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심리적 긴장, 촘촘한 대사, 미세한 표정 변화로 공포를 조성한다.
또한 연출은 미장센과 컬러 톤을 통해 분위기를 정교하게 조율한다. 블루와 그레이가 주조를 이루는 화면은 전체적으로 차갑고 무기력하며, 귀신의 존재가 감지되는 순간마다 배경의 사물과 조명에도 미세한 변화를 준다.
음악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으며, 때로는 완전히 사운드를 배제함으로써 장면의 불안감을 극대화한다. 이 모든 요소는 ‘보여주지 않고도 무섭게 하는’ 진짜 공포의 미학을 실현한다.
3. 악귀의 정체, 그 실체보다 중요한 ‘이유’
<악귀>는 단순히 누가 귀신인가, 누가 죽였는가를 밝히는 미스터리가 아니다. 이 드라마의 궁극적인 질문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 ‘무엇이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가’에 있다.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악귀’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보다도, 그가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사회적, 심리적 배경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여기서 작가는 인간의 탐욕, 복수심, 외면, 무관심 등을 하나의 거대한 구조로 엮어낸다. 귀신은 죽은 자의 저주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의 죄로부터 생성된 존재다.
또한 <악귀>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특정 인물의 행위가 어떤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그 인물조차 더 큰 사회적 악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 다층적인 인물 구조는 단순한 정의구현식 결말을 거부하고, 오히려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결국 이 드라마는 귀신 이야기로 포장된, 한국 사회가 외면한 진실에 대한 탐구서다. 그리고 그 결론은 간단하다. 가장 무서운 귀신은 따로 있지 않다. 우리가 외면한 사람, 잊혀진 이들, 책임지지 않은 죄들이 만든 존재가 바로 ‘악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