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에스콰이어’는 격식과 본능 사이, 인간 내면의 이중성을 섬세하게 그려낸 고급 심리 스릴러다.
1. 정장 뒤에 숨겨진 얼굴, ‘신사’란 무엇인가?
드라마 <에스콰이어>는 제목부터 강렬하다. ‘신사’를 뜻하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 단어의 정의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겉보기에는 정장을 빼입은 세련된 남성들의 이야기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욕망, 위선, 복수심이라는 치열한 감정의 전장이 펼쳐진다.
주인공 ‘윤상우’는 완벽한 외모, 고소득 직업, 매너 있는 말투를 가진 이상적인 ‘에스콰이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인물은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점점 가면을 벗고 본성을 드러내는 존재로 변모한다. 겉으로는 품격 있는 삶을 지향하지만, 실제로는 타인을 조종하고 파괴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인물. 바로 그 이중적인 얼굴이 이 드라마의 핵심 매력이다.
드라마는 윤상우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 각자의 ‘에스콰이어’적 가면을 쓰고 있다. 치밀하게 계산된 말과 행동, 공적 이미지와 사적 욕망 사이의 괴리는 매회 시청자에게 “신사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더불어 드라마는 패션, 조명, 세트 디자인 등을 통해 ‘에스콰이어’라는 단어가 가진 상징성을 시각적으로 강화한다. 정갈한 수트와 세련된 사무실 속에 숨은 불안과 분노는 마치 유리잔 안에 담긴 독처럼 조용히 관객을 압박한다.
2. 심리 스릴러의 교과서, 치밀한 서사와 연출
<에스콰이어>는 단순한 인물 드라마가 아니다. 본격적인 심리 스릴러이자, 관계의 역학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해부하는 정교한 구조물이다.
특히 이 드라마는 ‘대화’라는 장치를 극도로 활용한다. 등장인물들은 날 선 칼날처럼 감정을 숨긴 채 말하고, 상대방은 그 속내를 간파하려는 눈빛으로 맞선다. 단순한 대사 한 줄, 커피잔을 드는 손끝, 사소한 숨결 하나에도 긴장감이 흐른다.
또한 플래시백과 비선형 구조를 활용해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등장인물의 선택과 변화의 이유를 천천히 벗겨나가는 방식이 매우 인상 깊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이나 말이 몇 화 뒤에 명확해지는 순간, 관객은 마치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쾌감을 느끼게 된다.
음악과 촬영도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불협화음의 클래식, 반복되는 시계 초침 소리, 클로즈업의 집요함은 모두 인물 내면의 갈등을 시청자에게 전염시키는 장치다. 특히 조명은 감정 상태에 따라 정교하게 조율되며, 인물이 진실을 외면할수록 그림자가 짙어진다.
드라마의 정서적 긴장은 10화가 넘도록 단 한 번도 풀어지지 않는다. 이는 모든 연출 요소가 심리적 밀도를 유지하며 서사를 고조시키는 데 헌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스콰이어>는 느리고 무거울 수 있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3. 권력과 욕망의 드라마, 누가 진짜 괴물인가?
이 작품의 진짜 주제는 ‘괴물’이다. <에스콰이어>는 인간이 어떻게 괴물이 되는가, 혹은 처음부터 괴물이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쉽게 답하지 않는다.
윤상우는 분명히 비도덕적인 행위를 저지르고, 타인의 삶을 망가뜨린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내면은 상처투성이이고, 누군가에게는 피해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악인은 단순한 ‘악’으로 소비되지 않고, 그 악의 기원까지 조명받는다.
주변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법과 정의를 말하는 검사,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변호사, 모두가 어떤 면에서는 ‘신사’이고, 또 어떤 면에서는 ‘괴물’이다. <에스콰이어>는 이 경계선을 명확히 나누지 않고, 오히려 중간지대에서 인간의 복잡성을 탐색한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드러나는 권력 구조 속에서의 진실 은폐와 인간 도구화는 현실 사회의 단면을 보는 듯한 불쾌한 리얼리티를 자아낸다. 악을 단죄하는 시스템마저 악과 결탁되어 있다는 설정은 매우 무겁지만, 동시에 작품의 메시지를 날카롭게 전달한다.
결국 <에스콰이어>는 ‘괴물은 언제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는 고전적인 명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정장을 입고 있는 한 남자의 미소 뒤에서, 우리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