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영화 ‘여자의 일생’, 프랑스 고전 원작을 바탕으로 한 삶의 굴곡과 고통을 담은 시대극. 영화 덕후의 감성으로 4000자 리뷰!
1. 꿈과 순수의 시작, 그러나 현실은 잔인하다
2017년작 ‘여자의 일생(Une Vie)’은 기 드 모파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여인의 인생 전체를 압축적으로 조명하는 작품입니다. 프랑스 문학 특유의 우울한 정조와 함께, 한 인간의 삶이 외부 환경과 시대 속에서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를 정직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덕후의 시선에서 볼 때 단순한 문학 원작 영화가 아닌 정서적 실존주의 영화에 가깝습니다. 1. 꿈과 순수의 시작, 그러나 현실은 잔인하다 **2017년작 ‘여자의 일생(Une Vie)’**은 기 드 모파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여인의 인생 전체를 압축적으로 조명하는 작품입니다. 프랑스 문학 특유의 우울한 정조와 함께, 한 인간의 삶이 외부 환경과 시대 속에서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를 정직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덕후의 시선에서 볼 때 단순한 문학 원작 영화가 아닌 정서적 실존주의 영화에 가깝습니다. 영화는 순수하고 따뜻한 감성을 가진 귀족 소녀 ‘잔(조디 스미톨스키)’의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그녀는 아름다운 시골 저택에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며, 미래에 대한 기대와 로맨스를 꿈꾸는 전형적인 이상주의자입니다. 하지만 잔의 삶은 결혼과 동시에 차갑게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선택한 남편 줄리앙은 겉으로는 매너 있는 귀족이지만, 실상은 잔의 순수를 이용하고 배신하는 위선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외도로 인해 결혼 생활에서 깊은 상처를 입고, 이후에도 아들의 반항과 삶의 예기치 못한 시련들로 인해 점차 현실에 순응하며 자기 자신을 잃어갑니다. 덕후로서 이 영화의 뛰어난 점은, 삶의 ‘서사적 극적 전환’보다는 정서적 침잠의 리듬을 따라간다는 데 있습니다. 일반적인 드라마에서 기대할 수 있는 반전이나 희망적인 구원이 아닌, 한 사람이 조금씩 희망을 잃고 무기력하게 무너져 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하죠. 잔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카메라 워크는 마치 관조적인 일기장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꿈꿨던 세계와 실제 세계의 간극을 넓게 벌리면서, 관객은 점점 그녀에게 감정 이입을 넘어 연민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이 작품은 ‘순수함’이 시대와 현실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며 얼마나 잔인하게 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정의 기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 무너지는 인간성, 그리고 삶의 무력함
‘여자의 일생’은 단순히 여성 캐릭터 하나의 비극을 다룬 영화가 아닙니다. 이는 곧 한 인간이 가진 이상과 꿈이 어떻게 체제와 인간관계 속에서 훼손되는지에 대한 시적 고발입니다. 잔은 줄리앙의 외도 이후에도 그를 용서하려 하고, 아들에게 헌신하며, 시련에도 품위를 지키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태도는 세상에 의해 보상받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바로 **"착하다고 해서 세상이 착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태도입니다. 잔의 착함은 어느 순간부터 관객에게 답답함을 넘어서 고통스러운 무력감으로 다가옵니다. 덕후 입장에서 특히 인상 깊은 건, 이 영화가 희망의 서사를 거의 제거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관객은 힘든 시련 뒤에 보상을 기대하지만, ‘여자의 일생’은 그런 기대를 의도적으로 저버립니다. 잔의 아들 폴은 결국 어머니를 배신하고, 그녀가 유일하게 마음을 의지하던 존재마저 떠나버리는 구조 속에서 관객은 실존적 공허와 허무를 경험하게 됩니다. 잔은 점점 감정조차 마비되어 가고, 그 연기의 수위 조절은 조디 스미톨스키의 강렬하지 않으나 섬세한 감정 표현 덕분에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감독 스테판 브리제가 선택한 연출 방식은 철저히 절제되어 있습니다. 대사도 적고 음악도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자연광과 정적인 롱테이크 중심의 연출은 인물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묵직한 정서를 전달합니다. 이처럼 ‘여자의 일생’은 소리 높여 울지 않고도 관객의 마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작품입니다. 말 그대로 감정의 침전물이 남는 영화입니다.
3. 시대극 이상의 현실성 – 오늘을 비추는 잔의 얼굴
‘여자의 일생’은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고전 시대극이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와 감정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통찰과 울림을 줍니다. 잔이 겪는 삶의 부조리와 타인으로부터의 상처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 인간관계에서의 기대와 배신
-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내해야 하는 불합리
- 세상의 질서 속에 사라지는 개인의 의지
이 모든 것이 ‘잔’이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납니다. 덕후로서 특히 높이 평가하고 싶은 점은, 이 영화가 시대극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감정선은 전혀 낡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 시대의 젊은 여성, 혹은 이상과 현실의 충돌 속에 무기력해진 모든 사람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줄 수 있습니다. 촬영적으로는 계절의 변화와 자연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인물의 감정과 외부 세계의 상호작용을 시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겨울의 고요함, 여름의 강렬함, 가을의 쓸쓸함—all이 잔의 감정선과 맞물리며 영화의 리듬감을 만들어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잔은 여전히 모든 것을 잃었지만, 정서적으로 무너진 상태에서 다시 일어나려는 희미한 시선을 보여줍니다. 그 순간은 마치 이 영화가 내내 품어왔던 절망 속에서 아주 작은, 그러나 진실한 생명력을 발견하는 듯한 기분을 줍니다. 이 영화는 거대한 감정의 폭풍이 아니라, 잔잔한 바다 밑에서 천천히 가라앉는 돌처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관객을 흔듭니다.
‘여자의 일생’은 격정적인 드라마가 아닙니다. 대신 서서히 스며들어 마음을 잠식하는 정서적 서사입니다. 이 영화는 쉽게 위로하지 않습니다. 대신 삶의 불합리함과 인간의 나약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감독은 카메라를 통해 한 여인을 관찰하지만, 그 시선은 곧 우리 자신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 단순히 여성이 겪는 비극이 아니라
- 인간 존재가 겪는 무력함과 체념
-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마지막 생의 의지
이 모든 감정이 한 편의 긴 시처럼 녹아든 영화, 바로 ‘여자의 일생’입니다. 감정을 제대로 마주하고 싶은 날,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