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홀랜드 주연의 영화 《체리》는 단순한 전쟁영화가 아닌, 한 청춘의 절망과 사랑, 그리고 약물 중독으로 이어지는 나락의 기록이다. 이 영화는 시대와 나라, 전장을 초월한 인간 내면의 무너짐을 따라간다. 영화 덕후의 시선으로, 이 작품이 왜 강렬하고 불편하며 아름다운지를 짚어본다.
1. 한 청춘의 추락, 체리의 심리적 여정
《체리》는 톰 홀랜드가 연기한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고, 그가 상징하는 ‘청춘’ 그 자체이기도 하다. 영화는 크게 다섯 개의 장으로 나뉘는데, 사랑, 군입대, 전쟁, 귀환, 중독과 범죄의 파국이라는 뚜렷한 구조를 따른다.
처음 그는 순수한 대학생으로 등장한다. 루비(시아 브라보)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이 인생을 움직이는 유일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루비와의 이별을 견디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군에 입대하면서 체리의 인생은 완전히 전환점을 맞는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에서 심리적 전쟁 영화로 변모한다. 체리는 전쟁터에서 정신적으로 철저히 무너진다. 그가 겪는 PTSD는 단순한 외상후 스트레스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수준이다.
이후 그는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진짜 ‘전쟁’은 그때부터다. 마약에 손을 대고, 점점 더 극단적인 범죄로 나아가며 자신과 루비의 삶까지 망가뜨린다.
체리는 결국, 우리가 너무도 쉽게 놓쳐버리는 “전쟁 이후”의 사람들을 상징한다. 이 영화가 내게 강렬했던 이유는, 그가 전장에서보다 더 거칠고 불안한 삶을 살아간다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2. 톰 홀랜드의 연기 변신, 체리의 진짜 얼굴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역시 톰 홀랜드의 연기력이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귀엽고 정의로운 히어로의 얼굴이 익숙한 그가, 《체리》에서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그는 체리라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순수함, 광기, 절망, 중독, 범죄자의 얼굴까지 모두 보여준다. 영화 초반 대학생 시절의 풋풋함은 정말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 얼굴은 점점 말라가고, 눈빛은 공허함으로 가득 찬다.
특히 마약 중독에 빠져 루비와 함께 약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체리라는 인물이 마치 현실의 누군가인 듯한 사실감이 느껴진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영화의 나레이션이다. 톰 홀랜드가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은, 체리라는 캐릭터의 감정선과 내부 세계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영화가 도전적인 이유는, ‘착한 얼굴’로 알려진 배우가 지독하게 망가지는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그 도전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3. 연출과 편집의 실험성, 그리고 불편함
《체리》는 단지 이야기만 강렬한 게 아니다. 연출과 편집 방식에서도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한다. 루소 형제 감독은 이 영화에서 기존 히어로물의 정형화된 스타일을 완전히 벗어던진다.
영화는 카메라 워크, 색채, 장면 전환에서 매우 감각적인 구성을 취한다. 특히 전쟁 장면에서는 강렬한 붉은 색조와 함께,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구도를 사용한다.
또한 체리의 내면 상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때로는 과장된 클로즈업, 왜곡된 시점, 비정상적인 화면 전환을 활용한다. 이런 연출 방식은 처음엔 약간 낯설고 불편하지만, 체리라는 인물의 ‘정신적 혼란’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는 탁월하다.
음악 또한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극단적으로 밝은 음악이 어두운 장면과 겹치면서, 감정의 아이러니를 극대화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연출과 감각적인 편집에도 불구하고, 마냥 보기 편한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불편하고 피곤한 감정을 남긴다. 왜냐하면 우리는 체리라는 인물의 ‘파국’을 너무도 생생하게 지켜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의 무너짐은 연출의 장치로서가 아니라, 현실의 삶처럼 다가온다. 이 영화는 화려하게 터지는 클라이맥스보다, 점점 짙어지는 무력감으로 관객을 끌고 간다.
✅ 총평 – 사랑이었고, 전쟁이었고, 파멸이었다
《체리》는 보기 쉬운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가치 있는 영화다.
이 작품은 사랑의 힘이 어떻게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체리는 시대와 국가, 이념을 초월해 존재하는 한 인물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아픔을 지나, 끝없이 무너지는 청춘의 단면.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고통스럽게 직시하게 만드는 영화적 구성.
영화 덕후로서 나는 이 작품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강렬한 정서, 불편한 감정, 그리고 끝내 남는 여운.
《체리》는 단순한 한 청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